출근길 지하철

🔖 이게 지하철행동을 통해서 드러난 이 사회의 본질이에요. 쓸모 있는 사람만 시민권 열차에 태워 가지고 열심히 운반하고, 쓸모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예 무정차하고서 내버려두고 떠나는 거.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은 이 사회의 본질을 아주 압축적으로 담아놓은 곳이죠. 누가 사회 바깥으로 쫓겨나건 말건, 쓸모 있는 사람들끼리만 지지고 볶으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정시에 맞춰 운행 되어야 하는 장소니까.

🔖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전장연은 '사회적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약자 지위를 이용해서 처벌도 제대로 안 받는다고요. 오세훈 시장에게 분명하게 말을 하고 싶어요.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하고 그러는 게 테러라면요, 여태껏 이 국가가 장애인들에게 해온 역사는 그럼 장애인들한테 매 순간 테러였어요. 정말로요, 장애인들에게는 이 사회가 테러 그 자체예요. 우리가 불법을 저질렀으니 처벌해야 한다고요? 그럼 이 국가가, 이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가해온 테러는 왜 아무도 처벌하려 하지를 않나?

🔖 억압과 차별이란 게 대부분 그래요. 딱 마음을 나쁘게 먹고서 저놈의 자식들 쓸모도 없고, 꼴 보기도 싫으니까 혐오하고 차별해야지! 이러는 경우도 물론 있긴 하죠. 그런데 대부분은요, 그냥 옆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을 방치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동조해버리면서 억압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데 복무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이 사회의 차별을 묵인하고서, 큰 관심 안 두고 그냥 살아가는 게 별일이 아닌 거 같죠? 절대 그렇지 않아요. 나쁜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그런 태도가 다 누구한테는 엄청난 재앙이 되어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런 태도들이 지속되면서 세상은 계속 나아지지가 않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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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단기적으로는 우리 요구를 관철시키지 못할지도 몰라요. 아주 처절하게 패배를 할지도 모르죠. 그런데요, 이런 생각이 발아할 수 있는 씨앗을 이 사회 컨베이어 벨트 한복판에 심어둔 것만으로도 저희는 이미 이 사회에 희망을 심는 데 성공한 거라고 봐요. 그리고 그 희망이란 거는 정말로 모두에게 선물이 될 거야. 장애인들의 존엄이 인정되는 세상은요, 결국 모두의 존엄을 위한 토대가 될 거니까요.

🔖 진짜 사회가 바뀌려면요, 이런 시스템을 멈춰 세워야죠. 특히 지하철은요, 이 폭력적인 사회를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니까, 여기를 멈추는 건 우리에게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요. 우리를 지지해서 지하철에 나와줘도 참 고맙고 좋은데요, 그렇다고 거기에만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각자의 의제를 가지고서 이 시스템과 싸우기 위해 지하철에 모였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우리의 억압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함께 해방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이미 이 체제의 피해자가 된 모든 사람들이 단 하루만 이 시스템을 다 같이 멈춰 세울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할 수 만 있다면 정말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 생기게 될 거야.
다시 한번 말을 할게요. 이 세상을 바꿀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어요. 지하철에서 단 하루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당하고 있는 억압에 대해서, 이 공간에 와서 함께 이야기해주세요. 저는 이게 출발이 될 거라 고 봐요.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돈 논리보다도, 소수만의 성장 논리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사회로 나아가는 희망의 물리적 기반을 위한. 억압의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누구나 꿈을 꾸고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한.

🔖 저는 우리가 그렇게 이 사회에 모습을 드러낼수록 사회적 관계가 이미 조금씩 바뀌고 있는 거라고 봐요. 생각해봐요. 우리가 나타나기만 해도 출근길 지하철의 풍경이 바뀌잖아요. 버스의 풍경이 바뀌고, 거리의 풍경이 바뀌잖아요. 거기에서 이미 관계의 변화를 저희는 만들어낸 거예요. 원하던 사회를 단숨에 만들지는 못했더라도, 그 씨앗을 여기서 뿌리고 있는 거죠.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의 존재감이 이렇게 세졌다는 거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중요한 변화가 찾아온 건가요? 기껏해야 불쌍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깡패가 되고. 그렇게 깡패가 되어가지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 당신들이 목소리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넘어갔던 사람들도 목소리가 있다란 걸 보여주는 것만큼 강력하게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건 없죠. 제가 보기엔 이거야말로 적절한 애도의 과정이고, 쉽게 잊혀버린 사람들의 역사를 기억하려는 노력이에요.
우리가 지하철을 막을 때, 우리가 도로에서 길 때, 어딘가를 점거하고 소리를 지를 때, 우리에게 욕을 퍼부어도 괜찮은데요. 그래도 이 시스템 속에서 죽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잠시라도 한 번씩은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 사람들이 왜 죽어나가고 있는지, 자기에게는 정말로 책임이 없는지에 대해서도요. 이미 목소리도, 얼굴도 다 지워져서 이렇게 목록으로밖에 남길 수 없지만은 그래도 꼭 한 번쯤은 되새겨 주시길 바랄게요.

🔖 "사회 전체를 이동시키지 않고서는 학교조차 갈 수 없다는 것, 사회 전체를 새로 배우게 하지 않고서는 야학에서의 작은 배움도 불가능하다는 것." - 고병권, 《묵묵》, 돌베개, 2018, 26쪽

🔖 그렇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요? 네. 많이 들겠죠. 그런데 돈이란 게 왜 있는 건가? 사람들 잘 살라고 있는 게 돈 아냐? 그냥 돈 불려대려고만 돈을 사용하려 하고, 그래서 세상을 망치건 말건 거기에만 돈을 투자하려 하는 지금 체제가 진짜 이상한 거지.

🔖 가장 중요한 건요, 이렇게 그 쪼끄만 한 차로에다가 우리 주권이 행사되는 망명정부를 세워두면은 힘없는 사람들에게도 주권자로서의 자부심이 생긴다는 거예요. 생산성 없다고 여태껏 시설에 갇혀 있었던 사람들, 방구석에 처박혀서 가족들이 밥 챙겨주면 그거만 얻어먹고 하루 종일 누워 있던 사람들이 지금껏 살면서 어떤 자부심을 느껴 봤겠어요. 굳이 집회 안 나와도 무슨 일인지 알리는 건 유인물을 나눌 수도 있고 설명할 수도 있는데요, 그건 지식일 뿐이지 자기 이야기인데도 자기 이야기로 잘 여겨지지도 않아.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 한 차로 더 먹고서 자기 주권이 행사되는 공간을 조금이라도 가져봐. 이게 그냥 유인물 보는 거랑 차원이 다른 엄청난 성취감이라는 게 생기는 거거든. 이 사람이 사회적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거야.

🔖 그런데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던 사람들 개개인의 존재를 현미경으로 쫙 살펴보고 서로 지지고 볶고 매일같이 난리를 치다 보니까는 그 작은 거 하나하나에서 정말로 우주가 보이기도 하더라 고. 장애인 당사자 한 명 한 명이 겪고 있는 아주 사적인 삶의 경험들 속에서, 이 사회 전체가 어떤 메커니즘을 가지고서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지 같은 커다란 원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면은 거기에서부터 우리가 장기적으로다가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을 하는 거고. 당사자의 존재를 재발견하고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현미경 들여다보듯 이 세밀하게 바라본다는 거는요, 장애인운동에서 이렇게나 필수적이고 중요한 거예요.

🔖 장애인이 긴다는 건 그동안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자기 불쌍함을 부각해서 동정을 이끌어내는 방식이었죠. 실제로 장애인들이 먹고살려고 구걸을 할 때 그렇게 많이 하기도 했고. 그런데 긴다는 게 장애인들이 싸우는 수단이 되는 순간, 이 긴다는 행위의 성격 자체가 바뀌어요. 구걸하는 거에서 이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거로 바뀌고, 그거는 이제 더 이상 '불쌍'해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불온'해 보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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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자기 몸 자체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몸짓으로 이 사회에, 이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란 것에 경종을 울리는 거야. 긴다는 건 이 사람들에게 결국 자기 언어였던 거고, 나아가서 새로운 시간성을 창조하는 무기이기도 했던 거야. 이거 정말이지, 엄청난 자부심이 될 수 있는 거거든. 사람들이 완전 무시해왔던 자기 몸의 속도로 세상 한복판을 기면서 이렇게 세상을 멈춰낼 수 있는 거구나. 나의 몸이, 나의 속도가 이렇게나 힘을 가질 수가 있는 거구나, 하고서.